☞ 글 펌 ☜

요즘의 결혼 상담소

난초9 2006. 4. 24. 08:21

“결혼도 사업” 婚테크 요지경…학력·재력·외모·나이따라 ‘몸값’ 천차만별


[쿠키 사회] 한순간이었다. 28세로 아직 젊고,그래도 괜찮은 직업을 가진 여성이라는 자부심은 결혼시장에 발을 담그는 순간,여지없이 무너졌다.


“잘 찾아오셨어요. 문수정 님의 경우는 이제 한해 한해가 다르니까요.”


우리 사회내 결혼시장의 현실을 직접 느껴보기 위해 서울의 한 유명 결혼정보업체를 찾았다.


15년차 커플매니저는 상담 시작부터 냉정한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5살 연상까지 생각하세요. 28세면 두 살 정도 많은 남성을 원하시겠지만 30세 남성은 26세 여성을 선호하시거든요.”


세부내용을 들어보니 여성에게 나이는 최대 걸림돌이다. 32세가 넘으면 1년 기준으로 남성과의 만남횟수가 8회에서 6회로,34세 이상이면 4회로 줄어들었다. 36세 이상 여성은 아예 초혼 남성과의 만남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결혼정보업체가 400여개로 추산될 정도로 성황이다. 업계 5위 안에 속하는 A사도 올해 월평균 회원 가입률이 지난해 평균보다 25% 정도 증가했을 정도로 결혼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랑보다는 조건을,소중한 인연보다는 합리적이거나 물질적 선택이 선호되는 결혼 풍속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회원 가입자격은 남성 경우 26세 이상,키 168cm 이상,학력은 전문대졸 이상이다. 여성은 23세 이상,158cm 이상,고졸 이상으로 제한돼 있었다. 고졸 남성이나 키가 작은 여성은 가입조차 차단돼 있는 셈이다.


회원은 고졸,대졸 일반,전문직 등 3가지로 분류되는데,전문직 회원은 가입조건이 더 까다롭다. 전문직 회원은 이른바 ‘사’자 직업이나 고위 공무원,교수,최고경영자(CEO) 등이었고,전문직이어도 32세를 넘긴 여성은 전문직 자격을 박탈당한 채 대졸 일반으로 분류됐다.


연회비는 고졸이 88만원,대졸 일반은 121만원,전문직은 242만원으로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만남 자체는 원칙상 같은 그룹내에서만 가능하다. 고졸은 고졸끼리,전문직은 전문직끼리 만나는 식이다. 학력과 직업 등에 따라 우리나라 미혼남녀의 ‘몸값’은 이미 매겨져 있다.





전문직 남성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전문직 연회비를 내면 전문직 회원으로 가입은 되지만,남성도 여성의 조건을 따지니까 남성 소개는 자신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말이 되돌아왔다.


나이에 이어 경험한 두번째 냉정함은 직업이었다.


“기자세요? 죄송하지만 그냥 직장명만 적고 직위는 사원으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일반 사무직으로요. 아무래도 여기자라면 까다로울 것이라는 편견이 있거든요.”


교사,공무원,공기업 직원 등 남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아닌 여성들로서는 또 한단계 조건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사회 저변에 짙게 깔려있는 학력의 벽도 엄청나다. 커플매니저는 “스카이(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일컫는 말) 출신만 고집하시는 것은 아니죠? 지방 국립대졸에도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라고 운을 뗀다. 이 때쯤되면 자신이 만날 수 있는 남성 또는 여성이 어느 정도 외모에,연소득이 얼마쯤이고,세칭 일류대인지 아닌지,재산상태는 어떤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신분과 몸값도 정해졌다는 뜻이다.


원하는 남성의 조건을 적을 때도 사회인식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외모,경제력,성격,종교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동거여부도 선택항목에 포함돼 있다.


“남성 키를 크게 적으면 만날 수 있는 범위가 더 줄어듭니다. 170㎝ 이상으로 하세요. 20대 후반은 보통 남성의 외모보다 경제력을 중시하는 성향을 보이시는데 문수정님도 마찬가지시죠?”


키,몸무게,재산정도,주거형태 등을 적을 때는 ‘꼭 이래야만 하나’라는 망설임이 계속됐고 마지막에는 집안정보까지 공개해야 했다.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의 학력과 직업까지 요구됐다.


남성은 집안보다는 본인 경제력이 더 중시되지만 여성은 전문직이 아니더라도 고위 공무원이나 군장성,기업체 임원 이상,재력가의 자녀라면 전문직 회원에 포함될 정도로 집안배경이 중요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전문직 남성중 일부는 여성에게 열쇠를 요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성 집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요.”


‘재테크에 비유한 ‘혼(婚)테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이유가 이런 것이구나.’


한숨이 자연스럽게 새어나왔다.


“의사,변호사 같은 분을 비롯해 일반 직장인까지 왜 100만∼200만원의 회비를 내면서 이 곳을 찾겠습니까? 원하는 조건의 상대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기 때문 아니겠어요?”


이렇게 따지는 신상 조건이 유명업체의 경우 최소한 150가지 이상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조건과 조건의 만남이었다.


1시간여 상담을 마치고 나니 이제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만 남게 됐다. 하지만 계약을 할 필요는 없었다. 결혼은 사람이 한단계 성장하는 통과의례라는 믿음이,결혼을 일종의 ‘사업’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문수정 기자

'☞ 글 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만장자  (0) 2006.04.27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0) 2006.04.25
느낌이 좋은 사람과 만나고 싶다  (0) 2006.04.24
손님 사랑을 두고 내리셨군요  (0) 2006.04.24
고도원의 아침 편지  (0) 2006.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