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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자택

난초9 2012. 5. 30. 10:32

역대 대통령의 집들

박정희(朴正熙·1917~1979) 전 대통령이 5·16군사혁명을 계획·지휘했던 서울 신당동 집이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7일 '신당동 박정희 가옥'과 '서교동 최규하(崔圭夏) 가옥'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본지 8월 8일자 보도)

건국 60주년을 맞는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명박(李明博) 현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10명이 나왔다. 이 가운데이승만(李承晩)·윤보선(尹潽善)·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희대의 명당으로 알려졌던 이들의 생가(生家)와 사저(私邸)는 지금 어떤 모습들일까.


▲ 이승만의 이화장 / 관리비 안나와… 10년간 정부는 외면만
이승만

이 전 대통령의 사저 이화장(梨花莊)은 서울 대학로 방송통신대학의 뒤편에 있다. 여기서 그는 1947년 10월부터 1948년 8월 경무대에 들어갈 때까지 살았고, 4·19로 하야한 후 1960년 5월 하와이로 떠날 때까지 머물렀다.

이화장은 이 전 대통령 기념관으로 조성돼있다.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부부가 생활했던 본채에는 당시 사용했던 집기·옷·침구류가 전시돼있고 바깥벽에는 독립운동을 했을 때와 대통령 재임시절의 사진이 붙어 있다.

이곳에는 이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李仁秀·75) 전 명지대 법정대학장 내외가 살고 있다. 며느리 조혜자(66)씨와 직원 1명이 이화장을 안내하는 일을 한다.

이 건물은 서울시 기념물이지만 조씨는 "관리비는 나오지 않고 농약 조금 뿌려주는 게 서울시에서 하는 모든 것"이라며 "남편과 나, 두 아들이 직접 관리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김구(金九)기념사업회에는 수십억씩 주면서도 이 전 대통령 기념사업은 외면했다"고 했다.


▲ 윤보선의 아산 생가 / 지자체가 해준 건 소화기 놓은 게 전부
윤보선

윤 전 대통령의 사저는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근처다. 이 집은 구한말 '민 부처'라는 별명이 붙은 민씨 대감이 지은 '아흔아홉칸' 저택이었다. 지금은 문간채·산정채·안채·작은 사랑채만 남아 있다. 대지 1400평에 건평 250평. 현재는 윤 전 대통령 후손이 살고 있다.

건물 앞에는 '내셔널 트러스트'의 마크가 붙어 있었다. 벨을 누르자 사람이 나왔지만 "사람이 살고 있어 내부 촬영은 안 된다"고 말했다. 담장 너머로 집 안에는 빨랫감, 선풍기 등이 보였다.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생가도 한옥이다. 서울 집과 달리 안채·사랑채·행랑채·문간채 4동으로 단출하다. 건평 352㎡. 1984년 중요민속자료 196호로 지정됐다. 생가 주변에는 해평 윤씨 일가의 집이 모여있다. 윤 전 대통령의 생가는 그 중 손질이 가장 잘돼 있는 편이었지만, 부엌엔 담배꽁초가 나뒹굴었고 흙 담장엔 금이 가 있었다.

대문은 열려 있었지만 창문과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있었다. 주민은 "대통령의 집안일을 돕던 친척이 9년 전 이사간 뒤 지금은 마을 노인회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남대문에 불 난 뒤 여기저기에 소화기를 놓은 게 전부"라고 했다.

    ▲ 박정희의 신당동 집 / 시장 골목 옆… 최근 문화재 등록 예고
    박정희

    박 전 대통령의 사저는 서울 신당동 시장 골목 옆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 이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유가족이 살기도 했으며 현재는 육영재단 소유다.

    뾰족한 쇠창살로 둘러싸인 담장에는 문 근처를 비추는 CCTV카메라가 2대 있다. 1년 전부터 집을 관리해온 김준성(60)씨는 "도둑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자꾸 들어오려고 해서 경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리로 지붕을 잇대어 인근 건물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마당 안쪽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잔디 깔린 마당에는 소형차가 1대 있었다. 김씨는 문화재 등록에 대해 "이렇게 늦게 된 것이 다 지난 정권 때문"이라며 "이 참에 근처를 모두 박 전 대통령 기념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본채·창고·추모관·관리동으로 이뤄진 경북 구미 생가는 공원화돼 있었다.

    생가 옆에는 박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 땄다는 감나무가 남아있다. 생가는 초가집인데, 원래의 집은 아니고 박 전 대통령 재임 시 원래 모습을 본떠 만든 것이다. 생가 관리는 구미시가 맡고 있다. 생가 터, 주변 땅, 분향소도 구미시 재산이다. 시 소속 정규직 공무원 2명과 일용직원 1명이 상근직으로 일한다.

      ▲ 최규하의 서교동 집 / 고인 약속대로 아직까지 연탄 보일러 써
      최규하

      최 전 대통령의 사저는 홍대 앞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서울 서교동 골목길 안쪽에 있다. 그는 1973년 명륜동에서 이사해 와 2006년 영면할 때까지 줄곧 여기서 살았다.

      최 전 대통령의 집 주변은 높은 건물로 변해 있었다. 바로 옆 건물은 3층 높이의 현대식 건물이었고, 맞은 편에는 10층 건물이 올라가 있었다. 사저는 개발의 물결이 비켜 지나간 평범한 1970년대 개인주택으로 보였다.

      이 집은 아직도 연탄으로 보일러를 땐다. 최 전 대통령은 1979년 제2차 오일파동 때 강원도 탄광에서 광부들과 '나만이라도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연탄을 때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것을 끝까지 지켰다.

      집안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러 봤지만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주민 김태완(60)씨는 "최 전 대통령 생존 시에는 비서관도 오고 경찰도 있었지만 요즘은 조용하다"며 "이 건물을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에 있는 생가 터엔 원주시립박물관 부속건물이 들어서 있다. 1994년 원주시가 생가를 보존하고 박물관도 지으려고 사업을 추진했지만, 지역 시민단체의 반대와 충돌 끝에 1998년 백지화됐다.

        ▲ 전두환의 연희동 집 / 집 근처에 차량막는 철제가시… 문패 없어
        전두환

        전 전 대통령의 사저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다. 사저 골목 앞부터 사복 의경들이 꼬치꼬치 목적을 물었다. 건물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집 안에서 경호원이 나와 "보안상의 문제로 사진촬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2m가 넘는 높은 담장 위로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집 안은 바깥에서 보이지 않았다. 대문 앞에는 문패가 걸려 있지 않았고 집 근처에는 '*'모양으로 생긴 차량 저지용 철제 가시가 놓여있었다.

        전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다. 1034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전두환 대통령 생가'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생가는 안채·행랑채·측간 초가건물로 이뤄져 있다. 처음에는 5채였지만 1988년 11월 방화로 2채가 타버렸다.

        생가는 경상남도에서 사들여 합천군으로 넘겼고 군은 매년 1차례씩 초가 지붕을 보수하고 있다. 생가 담장에 나무를 말리고 있던 80대 할머니는 "전 전 대통령이 성묘차 1년에 1~2번쯤 내려왔다가 집에 들렀다 가지만 묵고 가진 않는다"며 "옛날 그 집이 아닌데다가 사람 살라고 만들어놓은 집이 아니라서 올 일이 없다"고 말했다.

          ▲ 노태우의 대구 생가 / 부엌엔 쓰레기 '수북'… 불은 안 들어와
          노태우

          노 전 대통령 사저는 전 전 대통령 사저와 2~3블록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 집을 지키는 경찰과 달리 이곳의 경찰은 취재를 방해하진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도 대문에선 보이지 않았다. 담장 바깥으로 보이는 것은 2층 높이의 경호원 숙소와 조리실 뿐이었다. 사저 주변에는 무인경비시스템이 설치돼 있었다. 이 집에도 문패는 없었다.

          생가는 대구시 동구 신용동에 있다. 생가는 본채·우사·창고로 이뤄진 기와집이다.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산 곳이라고 한다. 문풍지는 뚫려있고 부엌에는 쓰레기가 수북했다. 마당에도 담배꽁초가 깔려있었다. 전기설비는 돼 있었지만 불이 들어오진 않았다.

          이 집은 노 전 대통령의 7촌 조카인 노재달씨가 관리하고 있다. 노씨의 어머니 서인순씨는 "돈이 없어 사람을 써 관리하진 못하고 가끔 혼자 가 쓰레기나 줍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도와주진 않느냐는 질문에는 "뉴스 보니까 그 쪽도 돈 없기는 마찬가지라고…"라며 말문을 흐렸다.

            ▲ 김영삼의 상도동 집 / 서민주택 옆 3층 건물… 대문 열어 놔
            김영삼

            김 전 대통령의 서울 상도동 사저는 면적 340㎡ 정도의 3층 건물로 전·노 두 전임 대통령의 사저와 달리 서민주택에 둘러싸여 있다. 집 앞엔 '金泳三'이란 문패가 붙어 있었고 문이 열려 있었다. 집안 1층은 경호원 대기실이고 2층에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이 있다.

            생가는 경남 거제시 외포리 대계마을이다. 옥포 해수욕장을 지나 고개 하나를 넘으면 외포리가 나오는데 마을 입구에서 보이는 번듯한 기와집이 생가다. 이 집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 복원된 다른 집들과 달리, 원래 김 전 대통령이 살던 집이 남아있는 것이다.

            크기는 본채 76㎡, 사랑채 26㎡다. 김전 대통령의 6촌이 살면서 관리를 해왔지만 1987년 태풍 셀마로 건물 어귀가 무너진 뒤 빈 집이 됐다. 집을 수리한 후 거제시에 기부해, 현재 거제시 소유다. 연간 관리비로 2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생가 뒤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김연옥(60)씨는 "김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처럼 내려와서 살았으면 동네도 발전되고 좋았을 텐데, 거기(서울 상도동)에 살아버려서 마을 사람들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말했다.

              ▲ 김대중의 하의도 생가 / 종친회서 복원… 1년 1번 초가지붕 고쳐

              김대중

              김 전 대통령 사저는 서울 동교동이다. 사저 옆은 연세대와 함께 설립한 김대중 도서관이다. 대문 앞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의 이름이 함께 걸려 있다. 사저는 대지 173평에 연면적 199평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 양옥이다. 이 집도 경호책임자가 사진 촬영을 막았다.

              생가는 전남 신안군의 작은 섬 하의도다.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 1시간을 가는데 오전 7시와 오후 2시30분 2차례만 배가 다닌다. 하의도에서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면 생가다.

              생가는 본채·헛간·측간 등이 초가집으로 지어져 있다. 다른 대통령 생가처럼 원래의 집은 아니고 1999년 김해 김씨 종친회에서 돈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이곳에서 20m 떨어진 원래 생가에는 터를 알리는 돌만 놓여 있다.

              생가는 옆에 사는 양재윤(48)씨가 관리한다. 그는 1주일에 2차례 잔디를 깎고 1년에 한번 초가 지붕을 고치고, 담장을 보수한다. 방에는 대통령 재임 시절의 사진과 저서를 모아놓은 책꽂이도 있다. 생가는 신안군 소유로, 하의도 면사무소가 관리하고 있다. 신안군은 김 전 대통령의 생가를 '노벨평화공원'으로 만들 계획으로 부지 매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