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6
현대차 신형 제네시스(왼쪽)와 LG전자의 휘어진 휴대폰 G플렉스. /현대차·LG전자 제공 |
요즘 사전 예약 판매를 자주 보게 됩니다.
어떤 물건인지 직접 한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업계에 알려진 소문과 일부 언론 보도에 소개된 정보 만으로 자신의 소비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뭐 소액 상품이라면 어찌 사고 또 어찌 팔든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겠지만, 사실 요새 예약판매를 하는 제품은 100만원 안팎의 고가 휴대폰이나 6000만원이 넘는 고급 승용차들이 주를 이루는 터라 ‘왜 저렇게 사고 팔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시 장에서 이미 잘 나가는 물건이라 검증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하는 예약 판매라면 사정은 좀 다르겠지만, 최근에는 신제품인데도 직접 한번 보거나 만져 볼 기회조차 주지 않고 심지어 실제 모습은 어떻게 생겼는지, 가격은 얼마인지도 공개하지 않고 제품을 사가라는 다소 ‘불편한’ 예약 판매도 있습니다.
최근 LG전자의 ‘휘어진’ 휴대폰 G플렉스와 애플의 아이폰5가 예약판매를 했고, 현대자동차는 대형 세단 제네시스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을 19일부터 사전 계약을 받아 1주일 후인 26일에야 차량 모습과 가격을 공개했습니다. 무려 5200명 가량이 실내외 디자인과 가격조차 모른 채 차량 모델 이름 하나 믿고 도장을 찍었다고 하네요.
따지고 보면 이런 식의 예약 판매가 일반적인 구매 정서와는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더 비싼 물건이면서도 당연하게 여기는 예약 판매가 있습니다.
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 현장 /조선일보 DB |
바로 우리나라 예약판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아파트 분양입니다.
1970년대 들어 본격화하기 시작한 아파트 분양은 지금의 분양 형태와 같이 모집공고를 내고 분양자를 먼저 모은 뒤, 이들이 낸 분양대금으로 아파트를 지어 완공하고 잔금 납입과 함께 입주가 이뤄지는 형태입니다. 이른바 ‘선분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최종 소비자라 할 수 있는 계약자들은 실물이 어떤지 모른 채 모델하우스만 보고 돈을 내 계약을 하는 것이니, 내가 살 물건이 어떤지 실물을 보지도 못하고 제품을 구매하는 요즘의 예약 판매와 거의 복사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 지만 이런 선분양은 한때 시장과 정치권으로부터 거센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에 불이 붙었던 2000년대 초중반, 건설업계가 선분양을 통해 ‘있지도 않은’ 물건을 소비자들에게 비싸게 팔아 건설회사 배만 불린다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던 겁니다.
결국 정부는 전에 없던 ‘후분양’ 제도를 만들어 시장에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과 건설사 분양가 폭리를 막기 위해 ‘(거의) 다 지어 놓고 팔아라’고 내놓은 조치였는데, 어째 후분양은 시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실물 없이 모델하우스만 보고 청약을 하는 선분양 체제로 다시 회귀했습니다.
선분양과 후분양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기 어렵게도, 분양 시장에서 만큼은 수요자(계약자)나 공급자(건설사)나 모두 선분양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실물 안 봐도 사겠다고 줄을 서는 아파트 청약. 이 시대 예약 판매의 진정한 ‘끝판왕’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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